고객 소멸의 시대, 비즈니스를 재정의하라

이연주 삼성전자 수석

✎ 에디터의 말

오늘날 우리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대신할 대체재가 넘쳐나고 브랜드 간 기술력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비 위축 현상까지 겹치면서 단순히 기술력만으로 고객의 선택을 받기는 더 어려워졌는데요. 고객의 지갑이 아닌 마음을 열게 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강연을 통해 ‘고객 중심’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짚어보고 우리 기업의 차별점을 점검해 보셨으면 합니다.

경기 불황에도 공항은 붐빕니다

소비를 이끌 젊은 세대는 점차 줄어들고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에 소비를 미루는 장년층도 늘고 있습니다. 물가는 오르지만 임금은 따라가지 못하고 글로벌 기업들은 수천 명 단위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고객의 소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가의 맛집 앞은 여전히 줄이 길고 연휴의 공항은 발 디딜 틈 없습니다. 결국, 돈을 지출하게 하는 것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닌 보다 ‘소비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맛을 내세요 ‘소비할 맛’

‘하고 싶었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고객은 소비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제 ‘고객을 중심에 두고 고객 경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말은 모든 기업이 지켜야 할 상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고객을 최우선에 두고 전략을 세우지만 고객은 기업들의 마음처럼 쉽사리 따라주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고객 중심’이라는 키워드를 좀 더 세분화하면 ‘Consumer Focus’와 ‘Consumer Centric’로 나눌 수 있는데요. 두 가지 모두 고객을 위한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Consumer Focus는 고객을 관찰하고 고객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주려 노력하는 방식이고, Consumer Centric은 고객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고객이 진정으로 열망하는 근본적인 욕구를 찾아내려 애쓰는 것입니다. 기업은 이 두 관점을 균형 있게 활용할 때 보다 정교하고 지속가능한 고객 경험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헨리 포드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위 그림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다면, 그 사람들은 ‘빠른 말’이라고 답할 거라 했습니다. 고객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 집중하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Consumer Centric’의 관점으로 상황을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겉으로 드러난 욕구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근본적인 욕구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것은 ‘빠르고 편안한 이동수단’입니다. 기업과 브랜드는 고객이 말하는 것 너머에 있는 진짜 바람을 읽어내고 ‘자동차’와 같은 새로운 해답을 제시해야 합니다.

고객을 위해 변화하는 브랜드 

(1) FENDER: 전자 기타 회사에서 음악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1946년 설립된 일렉트릭 기타 제조사 펜더(Fender)는 우리가 흔히 ‘일렉트릭 기타’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 전형적인 형태를 만든 브랜드입니다. 뮤지션은 물론, 기타를 처음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한 기업인데요. 하지만 음악 소비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펜더는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의 확산으로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자 오프라인 공연에 대한 수요가 줄었고 자연스럽게 기타를 배우려는 사람들도 감소하게 된 것인데요. 펜더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객 경험 설계’에 강점을 가진 새로운 CEO를 영입하게 됩니다.

그는 팬더의 시장 내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했습니다.남성과 기타 준전문가가 주요 고객일 것이라고 예측한 예상과는 달리 50% 이상이 여성 고객이었고 상당수가 기타를 처음 배우는 초보자였습니다. 이러한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CEO는 비즈니스 전략을 재정의 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뮤지션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브랜드 미션을 설정했고 그에 필요한 서비스들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고객이 자신의 신체 정보와 선호 색상을 웹사이트에 입력하면 커스터마이징 기타를 만들어주었으며 기타 튜닝 앱, 온라인 튜토리얼 구독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여 학습의 허들을 크게 낮췄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고객 만족으로 이어졌고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습니다.

(2) HopSkipDrive: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한 키즈 라이드 플랫폼
미국 스타트업 ‘HopSkipDrive’는 일하는 부모들의 ‘아이 픽업’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해 탄생한 키즈 전용 라이드 서비스입니다. 세 명의 엄마가 함께 창업한 이 브랜드는 ‘신뢰’를 핵심 가치로 삼고, 아이의 안전과 부모의 안심을 최우선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사 채용 기준이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며 교사 경력이 있는 경우 우대합니다. 기사의 프로필은 무조건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실시간 경로 알림은 물론, 아이가 기사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픽업 비밀코드를 도입했습니다. 또한 안전한 하차를 인증하는 시스템까지 갖춰 부모의 걱정을 줄이기 위해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죠. HopSkipDrive는 부모의 입장에서 부모의 걱정을 끊임없이 읽어내며 신뢰 기반의 서비스를 통해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3) 에버랜드: 테마파크에서 라이프스타일 파크로의 리프레임
저출산의 영향으로 놀이공원의 잠재 고객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이와 함께 놀이공원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은 막상 에버랜드를 즐기기도 전에 부모와 아이 모두를 지치게 합니다.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긴 대기 줄은 기본이고, 대기 시간 역시 길어져 피로감은 더 커지는데요. 직원의 친절함과는 별개로 곳곳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불편과 불만에 에버랜드는 깊은 고민에 빠졌고 한국의 디즈니’를 지향하던 기존의 브랜드 정체성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죠.

디즈니는 ‘디즈니 캐릭터와의 만남’, ‘동화 속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며 콘텐츠와 꿈을 파는 데스티네이션 파크입니다. 꿈과 희망을 전한다는 점에서는 에버랜드와 지향점이 비슷하지만, 제공하는 경험의 요소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에버랜드는 비즈니스 전략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에버랜드의 고유한 강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고객에게 어떤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하게 됐는데요.

에버랜드는 ‘사계절과 동물’을 강점으로 살려 이를 경험 자산으로 삼아 라이프스타일 파크로의 변모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사계절을 활용한 피크닉&글램핑 존, 온라인 동영상 플랫품을 통한 라이브 동물원, 밤 사파리 등 여러가지 기획하며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채워나간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마무리하며

기업 경영에 불리하게 작용할 요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변화된 환경에 기존의 강점이 상쇄되지는 않았는지, 기존의 전략은 이대로 괜찮은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객 경험의 중요함이 당연시 여겨지는 요즘.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니즈를 개발하는데 몰두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의 인사이트!

1. 지금, 기업에게 필요한 건 고객의 마음을 읽는 능력입니다.
2. 고객이 느끼는 경험의 한 끗 차이가 기업의 성패를 가릅니다.